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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두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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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66-03-30관련성지: 갈매못‘재건’이라고도 불렸던 황석두는 충청도 연풍(延豊)의 양반 가문에서 자라나 부친의 뜻에 따라 과거 시험을 치르러 상경하다가, 한 주막에서 천주교인과 사귀게 되어 입교하였다.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3년 동안 벙어리 행세를 하며 교리서를 탐독하였고, 이에 감동한 부친과 가족들도 입교하게 되었다. 그는 덕행이 뛰어나고 교리 지식이 풍부하여 주교와 신부들의 복사로,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고 주교에게 금욕과 절제를 위하여 아내와 별거할 것을 허락받고 독신 생활을 하였으며, 안 주교를 도와 교리서 번역과 교회 서적 출판에도 참여하였다. 1866년 3월에 먼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던 안 주교를 몇십 리나 따라간 황석두는 결국 함께 체포되어, 3월 30일 충남 보령군 갈매못에서 54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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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간난 아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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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과부순교일: 1846-09-20관련성지: 옥사서울의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난 이 아가타는 18세 때 혼인하였다가 3년 만에 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왔다. 이 때 외할머니의 권유로 교리를 배우고 유방제(劉方濟)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1846년 병오박해가 일어나자 현석문 회장이 마련한 집에 숨어 있다가 7월 11일에 현석문, 김임이, 정철염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9월 20일에 6명의 교우와 함께 33세의 나이로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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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원 아우구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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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40-01-31관련성지: 당고개서울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박종원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매우 궁핍하게 살면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범(앵베르) 라우렌시오 주교가 입국한 뒤 회장직을 맡아 보며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교회 일에 헌신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피신해 있던 그는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고 옥에 갇힌 교우들과 연락하여 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는 피신한 지 8개월 만인 10월 26일에 체포되었고, 이튿날 그의 아내 고순이(高順伊)도 체포되어 같은 옥에 갇히게 되었다. 박종원은 포청에서 아내와 함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순교를 준비하였고 또 아내와 함께 혹형과 고문을 견디어 냈다. 1840년 1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48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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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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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과부순교일: 1839-09-??관련성지: 옥사어려서 부모와 함께 입교한 이 가타리나는 14세 때 조(趙) 씨 성을 가진 외교인과 혼인하여 3남매를 두었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이 때 가타리나의 권고로 대세를 받았다. 1838년 말 자신이 살던 고장에 박해가 일어나자 가타리나는 집과 재산을 버리고 자녀들과 함께 서울로 올라가 조 바르바라의 집에서 같이 살았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 때, 주인집 세 모녀 그리고 자신의 큰딸 조 막달레나와 함께 체포되었다. 포도청에서 딸과 함께 신문을 받고 한 차례의 주리를 당한 다음 옥에 갇혔으나, 옥이 워낙 비좁고 불결하여 3개월이 지난 9월 어느 날 57세 나이에 염병으로 옥사,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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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주 아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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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동정녀순교일: 1839-09-03관련성지: 서소문 밖언니 김효임(金孝任)과 같이 동정 순교자인 김효주는 서울 근교 밤섬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 뒤 경기도 고양군 용머리(龍頭里)로 이사해 살았다. 아버지를 여읜 뒤 온 가족이 함께 입교하여 중국인 유방제(劉方濟) 신부에게 세례성사를 받았다. 언니 김효임, 동생 김 클라라와 함께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고는 아름다운 덕행과 극기로써 모범적인 신앙 생활을 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5월 3일 언니 김효임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에서 매우 혹독한 형벌과 잔인한 고문을 받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켰으며 형조에서도 굴하지 않았다. 1839년 9월 3일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24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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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집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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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6
신분 : 환부순교일 : 1839-05-26관련성지 : 포청옥서울에서 태어나 한강변 서강(西江)에서 살았던 장성집은 30세경에 교리를 배우고 예비신자로 열심히 생활하였다.그러나 점차 교리에 회의를 품어 신앙 생활을 중지하고 세속 향락과 재산 모으는 일에 몰두하였다.교우들의 권면과 가르침으로 회개한 뒤로는 자신의 죄를 보속하고 세속의 유혹을 피하기 위하여 방에 틀어박혀 추위와 굶주림을 무릅쓰고 기도와 성서 연구에만 전념하였다. 이러한 태도에 집안 어른들이 “예전처럼 자유롭게 드나들며 생활하는 것이 너의 신앙 생활에 무슨 방해가 되느냐?" 하고 만류하자 장성집은 “제가 전에 지은 죄는 모두 욕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시 그런 죄를 짓는 것보다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는 편이 더 낫습니다." 하며 자신의 뜻이 변할 수 없음을 밝혔고, 마침내 1838년 4월 세례와 견진 성사를 받았다. 굳은 결심으로 신앙에 귀의한 장성집은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순교할 목적으로 자수를 결심하였다가 대부의 만류로 자수하지 않았지만 며칠 뒤인 4월 6일 체포되었다.중병이 들어 포졸들이 가마에 태우려 하였으나 장성집은 포청까지 걸어서 갔다. 포청에서도 신문하는 형관에게 맑은 정신으로 교리를 자세히 설명하고 혹형과 고문을 참아 냈다. 그 뒤 장성집은 5월 26일 마지막으로 치도곤 25대를 맞고 옥사함으로써 순교하였다. 그 때 그의 나이 54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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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기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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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66-03-30관련성지: 갈매못‘낙소’라고도 불렸던 장주기는 경기도 수원(水原) 느지지(현 경기도 화성군 양감면 육당리)에서 태어나 1826년에 세례를 받았다. 박해와 친척들의 방해를 피해 충청도 배론으로 이사하였고, 회장이 되어 모범적인 신앙 생활을 하였다. 1855년 배론에 신학교가 설립될 때에는 자신의 집을 임시 신학교로 내어 주고, 자신은 신학교에 딸린 땅에서 농사일을 하며 잔일을 도맡아 하였다. 1866년 3월 1일 배론 신학교에서 신 신부와 박 신부가 체포되자 장주기는 제천 부근의 노럴골로 피신하였지만, 다른 교우들이 피해를 입을까 염려하여 자수한 뒤 서울로 압송되었다. 서울의 포청에서 고문을 견뎌 내며 끝까지 신앙을 지켜, 때마침 홍주 거더리에서 끌려 온 안 주교, 민 신부, 오 신부, 황석두 등과 함께 3월 30일 충남 보령군 갈매못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64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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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임이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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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동정녀순교일: 1846-09-20관련성지: 포청옥동정 순교자 김임이는 서울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7세 때 이미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한 뒤 신앙 생활에 전념하였다. 20세 때 아버지를 여읜 뒤 오빠와 함께 친척들의 집을 전전하였고,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난 뒤 이문우의 양모 오 바르바라의 집에서 5년 동안 살다가 1845년 김대건 신부의 집에 하녀로 들어갔다. 이듬해 5월 김 신부가 체포되자 당시 회장이었던 현석문은 김 신부의 집에 남아 있던 여교우들을 새 집으로 피신시켰는데, 7월 11일에 포졸들이 새 집에 들이닥쳤다. 그리하여 현석문, 이 아가타, 정철염 등과 함께 체포된 그는 9월 20일, 매를 심하게 맞아 거의 반죽음이 된 상태로 포청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 3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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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협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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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군인순교일: 1840-01-30관련성지: 옥사독실한 교우 가정에서 태어난 허협은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그 해 8월에 체포되어 포청에서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다. 처음엔 잘 참다가 형벌을 이겨 내지 못하고 배교의 뜻을 밝혔으나 곧바로 배교를 취소하였다. 형리가 배교 취소의 표시로 인분 한 사발을 마시라고 하자 아무 거리낌 없이 인분 한 사발을 다 마심으로써 자신의 배교 취소를 증명해 보였다. 그 뒤 허협은 여러 달 동안 포청옥에서 치도곤 130대 이상을 맞으며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켜 내고 1840년 1월 30일 포청에서 옥사하여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 45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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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루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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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과부순교일: 1839-07-20관련성지: 옥사김 루치아는 서울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부터 몸이 불구였다. 그래서 ‘꼽추 루치아’로 불렸다. 1801년 신유박해 이전부터 천주교를 믿었으나 남편과 가족들이 모두 외교인이라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결국 집을 나와 교우들의 집에 얹혀 살면서 병자들을 돌보며 천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성을 다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체포되어 포도청으로 끌려갔다. 나이가 많아(71세) 형벌은 받지 않았으나 온갖 교활한 신문을 받았다. 그러나 김 루치아는 한결같이 배교를 거부하고, 마침내 9월 어느 날 포도청에서 기력이 다해 옥에서 죽음으로써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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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희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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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부인순교일: 1839-09-03관련성지: 서소문 밖이연희는 남명혁(南明赫)의 부인으로 성품이 강직하고 사리에 밝았다. 회장인 남편을 도와 공소(公所)를 세워 주교와 신부를 맞아들이고 또 교우들을 가르쳐 성사를 준비하며 언제나 모범적인 신앙 생활을 하였다. 기해박해 초인 1839년 4월 7일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포청에서 열두 살 된 어린 아들이 고문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는 주님의 영광입니다." 하며 모정을 억누르고 자신도 혹형과 고문을 감수하였다. 형조로 이송되어 다시 3차의 형문을 받았으나 역시 굴하지 않았다. 9월 3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36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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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득인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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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6
신분 : 상인순교일 : 1839-05-24관련성지 : 서소문 밖서울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난 권득인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16세 되던 해에 어머니마저 여읜 뒤 혼인하였다.얼마 동안은 약장사를 하는 형과 함께 살다가 분가하여 성패(聖牌)와 성물(聖物)을 만들어 팔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 나갔는데 항상 새벽닭이 울 때 일어나 촛불을 켜 놓고 날이 밝을 때까지 기도하는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다.권득인은 1839년 1월 16일 아내, 처남, 어린 자녀 등 4명의 가족 그리고 김로사와 함께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그의 신앙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뒤에 가족들이 배교하고 석방되자 권득인은 오히려 가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순교를 권하는 편지를 써 보냈다.그 뒤 5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고, 5월 24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 때 나이는 35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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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뜨르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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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신부순교일: 1866-03-30관련성지: 갈매못프랑스 앙굴렘 교구 출신인 오 신부는 1862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1863년 6월에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로 조선 땅을 밟았다. 경기도 수원 근처에 있는 샘골에서 한국말을 익혔으며 충청도 홍주 거더리에서 전교하였다. 1866년에 박해가 일어나고 그 해 3월에 안 주교가 체포되자 피신하려고 배를 탔으나, 거센 역풍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거더리로 돌아와 체포되었다. 오 신부는 안 주교, 민 신부 등과 함께 서울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고, 3월 30일 갈매못에서 안 주교 다음으로 두 번째 칼날을 맞아 29세의 젊은 나이로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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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치백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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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사공순교일: 1846-09-20관련성지: 옥사‘군집’(君執)으로도 불리던 임치백은 한강변의 한 부유한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830년에 천주교를 알았으나 입교하지는 않았고, 천주교와 천주교인을 호의적으로 대하기만 하였다. 1846년 5월 아들 임성룡이 김대건 신부와 함께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이 갇혀 있는 옹진으로 가서 천주교인이라 속이고 자수하였다. 며칠 뒤 서울로 이송되어 포청에서 김대건 신부를 만나 교리를 배우고 곧 세례를 받아 순교를 결심하였다. 마침내 9월 20일 정오부터 해가 질 때까지 매를 맞고, 6명의 교우와 함께 43세의 나이로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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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경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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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40-01-23관련성지: 옥사충청도 정산(定山)의 부유한 교우 가정에서 태어난 정화경은 어려서부터 열심한 신앙 생활을 하였고, 장성해서는 더욱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하고자 고향을 떠나 수원 근처로 이사해 살았다. 이 곳에서 회장을 맡아 보며 자기 집을 공소로 내놓았고 또 서울을 왕래하며 힘 자라는 데까지 교회 일을 도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정화경은 매일같이 교우들을 찾아 위로하고 격려하며 순교의 마음을 북돋아 주었고, 박해를 피해 내려온 범 라우렌시오 주교에게 은신처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그해 8월 주교를 찾고 있던 밀고자 김순성(金順性, 일명 여상)에게 속아 주교의 은신처를 알려 주었다. 서양 신부를 잡으려던 김순성 일당은 정화경을 이용하여 신부들을 체포하려고 하였으나 그들의 계략을 눈치챈 정화경은 도망하여 신부를 찾아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고해성사를 보았다. 9월에 체포된 정화경은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내고 이듬해 1월 23일 33세의 나이로 포청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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